새벽말씀

0903 목요일 ㅣ 사람의 본질 ㅣ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2026-09-03 10:42:21
복된교회
조회수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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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의 모든 행하심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때로 인생을 고난 가운데 두시지만, 그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 천국과 영생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 변함없으시며,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죄 가운데 있는 사람도 버리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한 목회자가 교회에서 쫓겨난 뒤 70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목회가 잘될 때 설교를 잘한다는 자부심과 교만이 있었지만 모든 길이 막히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목회를 포기하고, 술과 세상에 빠져 자녀들에게까지
“교회를 다니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할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마음 깊은 곳을 뒤집는 강력한
회개의 영
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는 마침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높여주지
않아도 내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말씀을 전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돌이켰습니다.

→ 인간의 타락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인간을 끝까지 찾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배신’과 ‘하나님의 구원’의 반복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이것을 증언합니다.

  •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흉년과 죽음에서 이스라엘을 살리셨습니다.
  •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애굽의 압제와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은혜를 잊고 하나님의 뜻을 떠났으며,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까지 대적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다시 구원하셨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을 찾아 구원하십니다.**

4.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는 사람에게는 깊은 훈련이 있습니다.
요셉과 모세의 삶은 모두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 요셉은 어린 시절부터 깊은 절망과 고난을 통과했습니다.
  • 모세 역시 자신의 힘과 의지가 꺾인 후에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우연히 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의지와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빚어지는 과정
    입니다.

→ 때로 우리의 고난도 우리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5. 내가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조차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구원받을 만해서가 아닙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만해지면
“내가 기도한다. 내가 교회에 나와준다. 내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지만, 은혜를 잊은 사람은 이스라엘처럼 원망·불평·불신앙으로 흘러갑니다.

6. 구원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스데반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듯이, 이제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에 대한 감격과 감동이 있는가?”

십자가를 잃어버린 성도는 은혜를 잊고, 결국 교만과 불평과 불신앙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1. 하나님의 모든 행하심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때로 인생을 고난 가운데 두시지만, 그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 천국과 영생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 변함없으시며,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죄 가운데 있는 사람도 버리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돌아오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한 목회자가 교회에서 쫓겨난 뒤 70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목회가 잘될 때 설교를 잘한다는 자부심과 교만이 있었지만 모든 길이 막히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목회를 포기하고, 술과 세상에 빠져 자녀들에게까지 “교회를
다니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할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마음 깊은 곳을 뒤집는 강력한
회개의 영
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는 마침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높여주지
않아도 내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말씀을 전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돌이켰습니다.

→ 인간의 타락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인간을 끝까지 찾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배신’과 ‘하나님의 구원’의 반복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이것을 증언합니다.

  •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흉년과 죽음에서 이스라엘을 살리셨습니다.
  •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애굽의 압제와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은혜를 잊고 하나님의 뜻을 떠났으며,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까지 대적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다시 구원하셨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을 찾아 구원하십니다.**

4.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는 사람에게는 깊은 훈련이 있습니다.
요셉과 모세의 삶은 모두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 요셉은 어린 시절부터 깊은 절망과 고난을 통과했습니다.
  • 모세 역시 자신의 힘과 의지가 꺾인 후에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우연히 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의지와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빚어지는 과정
    입니다.

→ 때로 우리의 고난도 우리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5. 내가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조차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구원받을 만해서가 아닙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만해지면
“내가 기도한다. 내가 교회에 나와준다. 내가 했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지만, 은혜를 잊은 사람은 이스라엘처럼 원망·불평·불신앙으로 흘러갑니다.

6. 구원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스데반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듯이, 이제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에 대한 감격과 감동이 있는가?”

십자가를 잃어버린 성도는 은혜를 잊고, 결국 교만과 불평과 불신앙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 생각하기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기도한다.”
“내가 교회에 나와준다.”
“내가 했다.”

이렇게 생각합니까?

아니면,

“기도할 수 있게 하신 것도 은혜요,
예배의 자리에 부르신 것도 은혜요,
오늘 내가 믿음으로 서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고백합니까?

**나는 ‘내가 했다’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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